섹스, 우주적 오르가즘에 이르는 길 성의 다양한 관점

 

섹스, 우주적 오르가즘에 이르는 길

성 에너지를 끌어올려 우주와 하나 되는 법
 
이 글은 국내에 『폐허의 붓다』 『지구가 꺼질 때의 좌선』 등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일본의 각자(覺者) 무묘앙 에오의 제자인 호장 스즈끼의 탄트라에 관한 글을 일부 번역한 것이다. 이 글에서 호장 스즈끼는 인간의 성이 단지 감각적 만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신체내의 에너지 센터인 주요 차크라를 일깨워 초월로 가는 주요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육체를 통해 하는 섹스에 익숙한 우리에게 단지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궁극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성과 우주적 신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비전을 제시해준다.
 
또한 육체를 통해 하는 섹스에 익숙한 우리에게 단지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궁극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성과 우주적 신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비전을 제시해준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연인을 안고 애무하고 있을 때는 정말로 좋았다.
그러나 일단 옷을 벗자, 갑자기 기분이 사라지며
왠지 모를 상실감이 느껴졌다.
 
●벗은 몸을 서로 안고 만지는 동안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일단 본격적인 행위로
들어서자 하나 되었다는 기쁨이 일기는커녕
오히려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동안은 기분이 좋았다.
황홀한 오르가슴도 느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후에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볼 때는 기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일단 손을 잡고 만지게 되자 너무 육(肉)적
이라는 느낌이 들며 뭔가 잘못된 기분이었다.
 
이런 현상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더 자주 일어난다. 물론 남성도 잠재의식적으로 겪는 일이다. 여성들은 심리적으로 어떤 만족을 얻는 성향이 있다. 심지어 육체적인 오르가슴과도 상관없이.
 
한편 남성은 대개 사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갑자기 기분이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성은 단지 사랑스러운 포옹과 애무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육체적인 오르가슴도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일반적인 성행위는
1. 두 몸이 접촉을 갈구하며 시작된다.
2. 서로 포옹하는 것만으로 만족스럽지 않을 때 옷을 벗는다.
3. 맨 몸의 접촉으로도 충분치 않으면 삽입을 한다.
4. 단순한 결합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서로 율동하며 사정과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본능적인 섹스의 과정이다. 즉, 접촉의 정도가 심화될수록 결합 욕구가 커지면서 더욱 농밀한 차원의 행위로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의도적으로 다음과 같이 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1. 삽입은 하였지만 운동을 제한하여 절정에 오르지 않는다.
2. 벗은 몸을 서로 애무하기는 하지만 삽입은 하지 않는다.
3. 서로 끌어안고 애무는 하지만 옷은 벗지 않는다.
4.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상대의 얼굴만을 바라본다.
 
달리 말해 정상적인 성행위 과정을 역순의 단계로 밟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에테르체의 섹스
 
만일 남녀가 삽입을 한 채로 의도적으로 오르가슴에 이르지 않는다면 성 센터를 통해 방출되지 못한 에너지는 한 단계 상위의 센터인 배꼽 차크라를 통해 파트너의 배꼽으로 향하게 된다. 이 때 남성 에너지는 빛의 봉(棒), 빛의 페니스처럼 뻗어나가 여성 파트너의 배꼽(자궁 근처)으로 뚫고 들어가게 된다.
 
이 상태는 섹스의 차원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육체의 결합으로부터,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에테르체의 결합으로. 그러나 두 번째 신체(에테르체) 차원에서 만족에 이르려면 약 40분 정도의 삽입시간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이 방법을 통해 충분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쾌감의 질은 차츰 어느 정도 심리적인 차원으로 올라가게 된다. 여성 파트너는 일반적인 섹스보다 훨씬 더 강도가 높은 황홀한 감각을 배에서 느끼게 될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여성은 직경 10센티 이상의 큰 페니스가 배 속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차원의 섹스를 좋아하는 여성은 두려움을 모르는 배짱있는 남성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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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은 결합에 대한 깊은 갈망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그것은 사랑에 깊이 빠져 가슴이 두근거릴 때의 느낌과 같은 차원의 에너지이다.
가슴 깊은 곳에 약간의 비애감이 수반된 묘한 행복감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또한 가슴이 터질 듯한 팽창감과 동시에 완전한 자유의 감각을
얻지 못한 아픔이 한켠에 서려있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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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랄체의 섹스
 
더 나아가, 서로 끌어안고 애무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삽입을 억제한다면 배꼽 센터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갈급증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그 에너지는 마침내 가슴 차크라에서 하나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한 줄기 빛이 가슴 차크라에서 파트너의 차크라로 뻗어가게 된다.
 
여기서의 희열은 결합에 대한 깊은 갈망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그것은 사랑에 깊이 빠져 가슴이 두근거릴 때의 느낌과 같은 차원의 에너지이다. 가슴 깊은 곳에 약간의 비애감이 수반된 묘한 행복감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또한 가슴이 터질듯한 팽창감과 동시에 완전한 자유의 감각을 얻지 못한 아픔이 한켠에 서려있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가슴의 차원에서 하나 될 때 그 에너지는 남성에서 여성에게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반대로 여성의 가슴으로부터 남성의 가슴으로 흐르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여성에게 있어서 가슴은 양(陽), 여근은 음(陰)이고 남성에게 있어서 가슴은 음, 남근은 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슴 차원의 결합에서 남성은 수용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차원의 섹스를 좋아하는 여성은 감성적인 남자를 선호한다. 다시 말해 예민하고 조금은 여려 보여 모성애를 자극할 수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이 아스트랄체 차원에서 완전한 만족감에 이르는 데는 불과 10분이면 족하다. 즉, 두 가슴이 하나 되는 데 10분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10분은 일반적인 커플에게 있어서, 특히나 보통 남자에게 있어서 아스트랄체 섹스를 위한 최장 시간이다. 이 시간을 넘어서면 삽입 충동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일반적인 전희라면 남자는 1시간도 지속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슴의 합일’이 10분을 넘어서면 결합 충동은 너무 커져서, 대개 저급한 차원의 욕망으로 떨어져 버리게 된다. 그러나 만일 10분을 넘어서도 그러한 충동을 이겨내 지속시킬 수 있다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다르고, 완전한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면 달리 얻을 수 있는 그런 만족감이다.
 
아스트랄 차원 이상의 섹스
 
아스트랄 차원 이상부터, 에너지의 교환은 성별과 종(種)에 제한받지 않는다. 이 에너지 교환은 동성간에도, 또는 동물과도 가능해진다(성 센터와 배꼽 센터만이 기능하고 있는 사람들은 육체 차원의 성 에너지 교환이나 단순한 에테르 에너지 교환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동성애는 이렇게 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대개 동성애자들은 육체적 접촉이 있기 전에 심리적인 관계를 맺는다. 육체관계는 그 후에 이루어지게 된다. 동성애적인 관계에서 소위 플라톤적인 사랑이 중요시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동성애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반대 극성의 심리적 성별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차원에서 이성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먼저 ‘가슴’으로부터 느낀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욕망이 아니다. 또한, 의식의 중심이 높은 사람일수록 동성애적인 성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비록 의식의 중심이 높다는 것과 지성이 꼭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더라도,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지적이고 조용하고 정이 많은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가슴 차오르는 사랑’으로 시작하여 성적인 욕망으로 진전되는 것은 동성애자 뿐만 아니라 모든 정상적인 커플들이 밟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육체적 욕망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섹스가 종국에는 공허하게 끝나버리는 이유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성의 몸을 정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러한류의 가르침을 배우거나 실천할 자격이 없다 하겠다.
 
멘탈체의 섹스
 
이제, 서로 끌어안고 포옹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옷을 벗지 않는다면 ‘가슴의 합일’(아스트랄체의 섹스)을 체념하게 된다. 그에 따라 이번에는 목과 머리의 차크라가 상대의 그것과 하나 되려고 애쓰며, 그 결과 ‘빛의 페니스’가 남성의 이마로부터 여성의 이마로 뻗어나가게 된다. 마치 유니콘의 뿔처럼. 이 결합은 네 번째 신체(멘탈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랑할 때 머리와 머리를 맞대고, 얼굴과 얼굴을 부비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차원의 결합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남자가 연인의 목, 귀, 이마, 머리카락 등을 애무하는 것은 이러한 결합을 더욱 강렬하게 해준다. 여자들이 키스를 잘 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멘탈체 차원에서의 결합 욕구 때문이다.
 
멘탈체의 섹스는 여성을 황홀하게 하여 다리가 풀리고 다른 모든 생각들을 잊게 만든다. 최소한 이러한 차원의 합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섹스를 통해서는 ‘무아의 의식’ 또는 ‘에고의 죽음’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비록 멘탈체의 섹스에 의해 자아에 대한 집착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할지라도 의식의 존재에 대한 느낌은 아직 남아있다. 이 차원의 섹스를 좋아하는 여성은 심적인 집중력이 강한 남자, 꿰뚫을 듯한 눈을 가진 남자를 선호한다.
 
멘탈체 차원에서 만족을 얻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2분 30초정도에 불과하다. 대개 상대를 꼭 껴안고 싶다는 욕망은 2분이 지난 후에 매우 강렬해진다. 그러나 당신이 머리를 통해서만 교환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 완전한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섹스의 영적 측면
 
여기서 잠시 영적인 측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유체 상태에서의 만남, 또는 불교의 설화에 나오는 데바(천신)와의 만남에서 손끝만 살짝 닿아도 그 순간 황홀경에 빠지는 체험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이 차원에서인 것이다. 멘탈체 차원에서 깊은 황홀경을 체험한 존재들은 육체나 에테르 차원의 섹스가 다소 천박한 것으로 느껴진다.
 
또 도교에 방중술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건강의 증진을 위해 행하는 것으로서 에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류의 행위는 상대방에 대해 카르마를 남기게 될 것이다. 물론 방중술에는 가치 있는 정보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건강에 해를 끼치는 잘못된 성행위들에 대한 지적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성적인 문제는 성적으로 다루어져야만 한다. 우리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스피리추얼체의 섹스
 
마지막으로, 만일 당신이 연인과 50센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고자 하자. 그러면 그녀(또는 그)와 하나 되고자 하는 욕망이 광선으로 표현되어 정수리 차크라로부터 나오게 된다. 다섯 번째 신체(스피리추얼체) 차원에서 결합이 이루어지게 되면, 비록 객관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완전한 자아 충족감, 또는 주관적 지복감을 느끼게 된다.
 
이 차원에서는 자타의 구분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개체 관념은 희미해지고, 결국에 가서는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사라지게 된다. 스피리추얼체 차원에서의 합일을 좋아하는 여성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선호한다.
 
이 차원의 합일에 걸리는 시간은 찰라이다. 즉, 이 결합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수준의 합일은 사람, 동물, 자연 뿐만 아니라 스승과 제자, 다른 세계의 의식적 존재들과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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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홍성철 씨는
안양 출생으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신비주의 문학을 통해
정신세계에 입문하였으며 지금은 문학의 범주를 넘어서
인도철학을 비롯한 동서양의 제반 형이상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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