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탄트라(tantra)의 의미
<탄트라(tantra)>는 정신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의 tatri 또는 tantri에서 나온 말인데, 본래는 <넓힌다>라는 뜻을 가진 tan이라는 어원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결국 탄트라는 <지식을 넓힌다>는 뜻이고, 스스로 지식을 전부 몸에 익힌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탄트라란 본래는 산스크리트어로 <실>이라는 의미이다. 엄밀하게는 실의 씨실을 의미하고, 그로부터 여러 가지 내용이 나중에 파생되었다는 역사적인 기록이 있다. 넓힌다는 의미의 tan으로부터 나온 말이라 하여「그것에 의하여 지혜가 넓혀지는 것」이라고 확대해석할 수도 있고, 또「한 번 만들어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 이것이 탄트라」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은 나중에 힌두교의 종파적인 입장에서 탄트라의 기능을 칭송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그 내용면에서「진리라든가, 진언에 관한 심오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탄트라」라고도 말해지고 있다.
이러한 정의를 나열해보면, 우주의 진리를 둘러싼 사항과 신비적인 말에 대한 사항을 주제로 한 서적이탄트라라고 불리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이 설한 것이 아니고 선으로부터 들은 언어, 즉 슈루티($ruti)라든가, 신으로부터의 계시 즉 아가마(agama)라고 볼 수도 있으며 브라만 성전인 베다의 일부를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탄트라라는 말의 해석은 후세에 여러 가지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본래는 <씨실>의 의미가 그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인도에서 성전을 나타내는 언어에 수트라(sutra)라는 말이 있다. 성애에 관하여 서술한 '카마 수트라'는 잘 알려져 있지만, 불교 성전도 '수트라'라고 부르며, 본래 그것은 <날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수트라는 사상적인 내용이 풍부한 데 비하여 탄트라는 실천적인 면에 관하여 보다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탄트라(tantra)의 개념과 사상 체계
탄트라는 종교가 아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신비적으로 보는 태도도 아니다. 그것은 인생체험임과 동시에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정신적인 힘을 표출하는 방법이며 체계이다.
탄트라의 가르침은 확실히 비非아리안계 원주민인 고대 인도인에게 알려져 있었다. 기원전 3000년경의 인더스 문명에 속하는 하라파 문화 가운데에 요가의 자세라든가 여신숭배상의 형태를 볼 수 있는 것은 앞애서 살펴본 바와 같지만, 탄트라의 의미를 넓게 생각하면 분명히 인도 아리안계가 근원이고, 고대 인도 정통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탄트라가 기원전 1500년경에 만들어진 브라만교의 성전인 베다(veda)문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탄트라의 의례에는 베다의 행법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 많이 발견된다. 이 탄트라 의례가 대부분 인도철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탄트라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와같이 탄트라 형식이 끊임없이 갖가지로 발전해가는 동안에 우파니샤드나 요가, 또는 불교 등의 사상적 영향을 받으면서 인도 중세의 전기, 말하자면 8세기 내지 10세기까지에 완전히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탄트라의 성전에는 저자가 없다. 이것은 신이 썼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성전의 종류는 방대한 수에 이르고 각각 큰 차이가 있지만 모두 성스런 말이라는 의미를 가진<아가마>라든가 <니가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힌두교나 불교에는 일찍부터 문헌이 있었지만, 탄트라 행법이 생겨난 것은 성전이 완성되기 이전의 일이다.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탄트라 성전이 완성된 연대는 서력 초기라고 보는 것이 좋겠지만, 성립이 늦은 것은 훨씬 뒤인 18세기 까지로 연대가 내려가는 것도 있다. 탄트라 문헌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발전하고 있었고, 하나의 탄트라 성전에도 다양하게 시대적인 사고방식의 변화가 차차 덧붙여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어느 시대에 완성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각각의 성립 연대를 설정하자면 확실한 자료를 토대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탄트라의 영향이 인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문헌에서 보면 탄트라의 가르침은 세계 각지 특히 네팔·티베트·중국·일본·동남아시아 등지에 넓게 퍼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영향은 점차 지중해 문화에까지도 미쳤던 것 같다.
탄트라는 무엇보다도 스스로 깨우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능력에 알맞게 많은 사람의 다양한 요구에 적합한 방법이 개발되어졌다.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동일하더라도 각자가 다채롭게 독자적인 방식으로 정진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자유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속박을 부정하는 것만은 아니고, 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른다는 의미이다. 까달음에 따라서 순수한 기쁨이 생겨나고, 우주에 충만한 보편적인 지식이 몸에 익혀지는 것이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을 아는 것이 된다. 따라서 탄트라라는 인생의 목적이나 가치라는 점에 눈뜨기 위하여 정신과 육체 양면에 걸친 이론과 실천의 구조를 전개시켜왔던 것이다.
탄트라 본래의 사고방식은 역으로 말하면 인도철학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추상적으로 사색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어떤 방법이나 수단을 빌어 이떻게 목표에 도달하는가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이다. 탄트라를 싹트게 한 원동력은 바로 인도적 전통의 모태가 되었고 아울러 인도사상의 주료로서 성장해갔다. 물론 탄트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본래의 사상에 충실하는 것뿐만아니라, 때로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교(異敎)의 세계로부터도 스스로 장점을 흡수해왔다. 이와같이 탄트라는 바깥 세계로 크게 기반을 넓혀가면서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여 탄트라 독자적인 사고방식을 몸에 익혀왔던 것이다.
탄트라는 원지이론이며 시간·공간의 관계이며 천체관찰이며 우조론·수상학(手相學)·점성술·화학·연금술 등을 고도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연마해왔다. 우주의 원자이론을 탄트라가 발전시켰던 것은 아주 이른 시기였다.
탄트라에 따르면 우주는 <옴(om)이라는 단음절인 만트라(Mantra)와 같은 기본음으로부터 전개되어왔다고 한다. 우리들이 이 우주에서 보거나 느끼는 모든 물체는 각가그이 전동을 응축시킨 음(音)인 것이다. 이 에너지가 나타내는 보다 진보된 단계가 원자의 탄생이다. 우주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분해되고 다시 생성되는 과정을 거듭하는 원자집단으로부터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육체 어느곳에 영혼의 중추가 있는가를 발견하는 것도, 또 추상적인 기호를 통하여 여러 가지 요가의 수행을 닦는 경험도 모두 탄트라의 기준에 따르고 있다.탄트라는 갖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대자연이나 인생에 현실중시의 요소를 포함시킨다는 의미로밖에 다른
식으로는 볼 수 없다.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 있는 대자연에서나 인생에서나 인간이 인간이 자신에 눈뜨는 것만이 궁극적인 것이다.
아무리 눈깜작할 사이의 일생이라도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가 적극적인 일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 나타난 자연이나 그 자연을 은폐시키는 장애물에서 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탄트라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들을 직시하고 맞부딪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완전한 경험이라는 것은 현재 있는 그대 의식과 이로부터 생겨날 잠재력으로서의 의식을 잔면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탄트라에 따르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모두 푸루샤(puruSa)라는 남성원리와 프라크리티(prakRti) 혹은 샥티($akti ; shakti)라는 여성원리로 이루어진 이원론(二元論)에 기본을 두고 있다. 그곳에는 남녀의 교합이 사바신과 샥티와의 창조적인 결합으로까지 고양될 수 있다는 사상에 근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이 쉬바와 샥티는 불처럼 격렬하게 포옹한 결과 최고의 비이원성(非二元性) 즉 해탈(解脫)이라는 무이(無二)의 열락 속에서 이른바 단 하나의 원리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탄트라란 궁극적으로 신성한 깨달음에서 거듭 신성한 깨달음으로 발전해가는 직관의 학문이고, 그것을 통하여 신성한 지식이 드러나는 정신적 수행법이다. 앞에서 서술하였던 것처럼 탄트라 성전은 수 없이 많지만, 일반적으로는 64종류가 있다고 믿고 있다. 이 탄트라는 그의 배우자인 샥티(여신)의 진언(眞言)에 의하여 쉬바신이 이 세계로 가져왔다고 한다. 쉬바는 이 우주를 조종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그것은 샥티를 통해서 탄트라의 비밀을 이 세상에 공개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탄트라는 고대 인도인의 귀중한 보배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하여, 더 나아가서는 삼라만상·우주만물에 관한 가장 오래된 가장 과학적인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탄트라는 이른바 정신생활의 이론적인 면과 실천적인 면 양쪽에 걸쳐 있다. 이론적인 면은 니가마로 알려져 있고 실천적인 면은 아가마라고 부른다. 아가마는 쉬바가 왕비 파르바티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형식을 취한 탄트라이고, 니가마는 남편인 쉬바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아내 파르바티의 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아가마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 잠자고 있는 우주적인 힘 쿤달리니(kundalini)를 깨우치기 위한 탄트라의 비교적(秘敎的)인 부분이다. 실제적인 행법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탄트라는 이른바 도덕을 초월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의 계시이고, 마음이나 혼의 신비를 가리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본래의 모습에 눈뜨게 하는 것이다.
탄트라 행법의 정신적인 면인 아가마는 명상이나 요가와 관련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니가마는 탄트라 행법의 비밀에 관해서 파르바티가 쉬바에게 한 질문을 공개한 것이다. 파르바티는 생각나는 의문점을 떠올려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 내용이 니가마이고, 탄트라의 행법 즉 기초 이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탄트라는 본래 사상이나 철학을 설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대우주 즉 절대 세계와 소우주 즉 인간 세계가 본래 일체라는 생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향하는 실천의 도(道) 즉 수도의 방법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것을 읽거나 듣거나 하더라도 혹은 내용을 안다든가 이해한다고 해도 전혀 의미를 지닐 수 없다. 탄트라는 오로지 그것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함으로써 비로서 본래의 의의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탄트라의 세계는 외부로부터 접근하여 내용을 밝히려고 하면 완고하게 문을 닫아 버린다. 그러므로 탄트라의 세계를 정말로 알려고 한다면 우리들이 그 내면세계로 들어가 동화되는 길 밖에는 탄트라를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탄트라는 8세기 이후 인도에서 밀교(密敎)경전을 지칭하게 되면서부터 일반에게 알려졌는데, 그것은 진리의 천명이나 철학적 교리서라기 보다는 깨달음을 향한 수행박식이고 세계에 대한 일종의 태도이다. 탄트라는 주관과 객체라든가 정신과 육체 혹은 창조주와 피조물 등의 이분법에 기초를 둔 서구적 사고와는 달리 전체와 부분 또는 물과 물결의 관계처럼 불가분리(不可分離)의 양면성을 하나의 실상으로 통일하여 우주의 본길과 자아가 합을 되려는 방식이다.
인도인의 우주관에 의하면, 절대자로서의 브라만은 자체 안에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의 양면성을 가지고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창조와 파괴의 순환을 거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실상과 현상 즉 근원적인 진리로서 무시간성의 존재와 현실로서의 변화는 각각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서로 상징되어 창조와 분열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탄트라는 우주의 본질과 합일을 이루어 우주 본래의 지복至福으로 초월하려는 방식이다.
인간세계에서 변화와 괴로움은 일반적인 정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포함하여 현상계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절대적인 우주의 질서를 반영하는 소유주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그 본질에 있어서는 브라만과 동일하다고 하겠다. 인간 내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창조와 파과의 리듬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그러므로 탄트라는 대상을 분석하고 관찰하면서 진리를 추구해가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내면에서 진리를 깨달으려는 태도이다.
인간의 언어와 생각과 행동은 절대적 진리가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容器)이고 진리와 합일을 이룩하는 비밀의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입으로는 진리의 음성으로 진언(mantra)을 염송하고, 명상해야 할 형상으로서 만다라(mandala)나 얀트라(yantra ; 圖象)를 마움에 새기며, 신체의 움직임으로서 좌법(座法), 호흡, 인계(印契 ; mudra) 등을 종교의례로 삼아 수행하는 것이다.
탄트라는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의 시각에 의해서 사물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연의 무릇 사상은 절대진리의 자기전개이며 운동이기 때문에 오로지 법(法 ; dharma)에 입각하여 인연의 고리로서 파악한다. 그러므로 인간이나 신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모두가 같은 지평에서 연결되며, 우주의 리듬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생멸조차도 밀물과 썰물의 운동에 불과한 것이다.
탄트라에서는 모든 자연적 본능의 충족을 긍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고행이나 금욕을 통하여 자연을 얻게하거나, 육체를 약화시키고 정신적인 긴장과 갈등을 야기시키는 일은 생명의 건강한 성숙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오히려 자연의 저급한 충동으로부터 고상한 충동으로 향상되도록 수련할 것을 주장한다. 모든 자연의 충동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신성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진화의 창조적 에너지라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3. 탄트라(tantra)의 구분 - 힌두 탄트라와 불교 탄트라
탄트라는 크게 구분하여 인도에서 발전해 온 힌두 탄트라와 티베트에서 발전해온 불교 탄트라로 나누어진다.
힌두 탄트라에 의하면 절대자로서 신은 원형적인 남성원리로서 쉬바(shiva)와 변화를 나타내는 여성원리로서 샥티(shakti)라는 불가분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쉬바는 순수한 존재이며 무시간적 완전으로서 로고스(Logos)인 반면에 샥티는 시간적 변화의 세력이고 창조의 에너지이며, 자기실현의 기쁨과 사랑을 나타내는 에로스(Eros)이다. 그러므로 샥티는 영원한 완전성과 부단한 시간의 진화를 중재하는 세력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유한자(有限者) 속에서 무한성(無限性)을 드러내보이고 반대로 무한성 가운데서 유한자의 자기충만을 실현케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 세계는 에너지의 표상으로서 끊임없는 지속의 과정이며 영원한 흐름으로 파악되는데 이것은 이 우주의 창조적 에너지인 샥티로부터 솟아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샥티는 모든 개체인간의 근원에 깃들어 있는 정신 및 육체적 힘의 구심점이 된다. 따라서 탄트라 수행자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는 내재하는 샥티를 통해서 무시간의 시바와 결합하는 일이다. 이것은 남성적 <존재>와 여성적 <변화>의 신비스러운 결혼[Mahamaituna]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결합은 경전 가운데서 성적 결합으로 상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섹스는 수행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불교 탄트라에 있어서도 탄트라 기저에 흐르는 <절대자 속에서 이원성의 합일>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지만 다만 <반야(般若)>를 무시간적 절대성의 여성 원리로 보고 자비로서의 <방편(方便)>을 상대적인 세계의 활동으로서 남성원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힌두 탄트라와 마찬가지로 불교 탄트라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본래의 모습에서 말하자면 방편[upaya]과 반야[prajna] 결국 행동과 지혜라고 믿고 있다. 반야는 인생의 불행으로부터 각개의 마음을 해방시켜 주며, 번뇌의 장애를 제거하는 <완전한 지식>을 나타낸다. 이것에 대하여 방편 즉 깊고 큰 연민의 정인 <대비(大悲)>는 활동적인 힘이고, 인간의 영감의 원천이다. 이것은 인간이 정신적으로 깨닫기 위한 기폭제가 되어 우리 인간을 지혜와 해탈의 상태인 신비적인 <일여(一如)>의 세계, 즉 자신과 타인이 융합한 세계르 이끄는 것이다. 한편 반야라고 하는 것은 수동적인 힘이다. 결국 사람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방편의 도움이 있어야 된다. 힌두 탄트라에서는 쉬바가 수동적인 힘이고 샥티는 능동적인 힘이라고 생각한다. 샥티는 쉬바의 내재적인 원리이다. 그밖에는 힌두교와 불교의 신들이 똑같다고 할 수 있다.
불교 탄트라의 수행은 금욕주의 적인 불교의 전통과는 달리 법의 실상으로서 드러나 있는 현상계(現象界 ; 因緣세계) 및 육신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이며 성력(性力) 샥티는 성불의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불교에서 삼업(三業)이라 하여 엄격히 규율되어 있는 신(身) · 구(口) · 의(意)도 오히려 성불에 이르는 비밀이 담겨있다 하여 삼밀(三密)이라 불리우며,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중심이 되고 있다. 즉 의밀(意密)은 만다라의 시현(示顯)으로 표시되고, 구밀(口密)은 만트라[眞言]라는 진동음에 나타나 있으며 신밀(身密)은 후기 탄트라에서 마이투나[性交]라는 양성의 결합의례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탄트라의 결합의례는 기독교 문화권이나 유교 문화권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도덕적 논란과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켜왔던 국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탄트라에서 취급하는 성은 일반적으로 서구인이나 유교 문화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죄악시하는 병적 관념과는 달리 그것은 우주의 에너지인 생명력의 근원으로 합일하는 신성한 종교의례였던 것이다.
불교 탄트라는 대승불교에 도입되어 독특한 밀교철학을 발전시켜왔으며 마침내 대승불교에 속하면서도 새럽게 진언승(眞言乘) 혹은 금강승(金剛乘)이라 불리우는 밀교의 독립을 이룩하였다.
[출처] 탄트라 (한의학박사 이재형의 한방과 탄트라의 만남) |작성자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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