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섹스 그리고 깨달음

롤스로이스, 섹스 그리고 깨달음
오쇼 라즈니쉬 글·정인수
 
성이나 부와 같은 세속적인 것들을 집착과 억압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켜 진정한 깨달음의 길로 인도했던 오쇼. 물질문명으로 피폐해진 서구 사회에 명상과 함께 정신의 가치를 뿌리내리게 한 그의 강력한 영혼의 불꽃은 아직도 꺼질 줄 모른다.
 
‘가르키고 있는 달은 쳐다보지 않고 왜 손가락만 바라보는가?’
 
오쇼가 가르키고 있는 달은 ‘지금 여기, 그리고 깨어 있음’으로 광채를 내뿜지만, 사람들은 늘 오쇼가 갖고 있던 아흔 대의 롤스로이스 자가용과 여자들, 그리고 그의 손가락만 보고 있었다.
 
오쇼가 미국 오래곤주의 붉은 사막에서 공동체를 열었을 때도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기자들은 그의 영성과 빛에 주목하기보다는 재산과 여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내 90대의 롤스로이스에 관심이 있는 것은 바로 너희들이다. 너희들은 내가 롤스로이스를 단지 한 대만 가졌더라면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90대가 넘는 롤스로이스가 있기 때문에 너희들은 지금 전 세계에서 지금 여기, 이곳까지 왔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명상하라는 것과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에 살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은 자는 물질의 풍요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정설을 깨고 집착 없이 물질의 풍요를 누렸던 오쇼는 그의 물질세계를 비판하기 위해 왔던 그야말로 현실에 집착하는 이들을 명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나의 오쇼 아쉬람, 그 황홀한 축제
 
오쇼 라즈니쉬(1931∼1990)는 자이나교도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정신적 세계를 돌보아주었던 스승의 권고로 대학에 진학해 철학을 전공했으며, 한때 철학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깨달은 자들에게 흔히 있는 일처럼 오쇼에게도 유년기 때부터 그를 돌보아주는 두 마스터가 있었다. 오쇼는 이 두 마스터에 대해 그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 『나의 황금빛 유년시절』에서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다. 오쇼가 회상하는 그의 어린 시절은 어른을 능가하는 통찰력과 넘쳐나는 장난기, 재치로 아버지는 물론 동네 어르신, 꼬마들까지 궁지에 몰아넣곤 했다.
 
1970년대 세계를 휩쓴 히피 문화와 더불어 오쇼의 명상 센터는 시작되었다. 그의 폭넓은 지식과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직관의 가르침은 서구로부터 밀려온 히피들과 세상에 회의감을 느끼는 지식인들 속에서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한때 오쇼의 가르침을 듣는 장소에는 히피들로 가득했고, 일단 그들의 사고관을 대변하는 듯한 오쇼의 메시지는 그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히피들의 지나친 방종으로 오쇼는 결국 그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많은 히피들이 그를 떠났고, 반대로 남아 있는 이들은 진정한 명상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1974년 푸나에 지금의 오쇼 아쉬람이 만들어졌다. 그곳은 늘 축제 분위기였고, 자유로운 성(性) 해방론으로 인도 문화와의 충돌이 이어졌다. 오쇼는 인도의 성관념을 억압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성조차도 명상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쳤다.
 
“성은 추하지도 더럽지도 않다. 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집착하지도 억압하지도 마라.”
 
이러한 오쇼의 가르침으로 한때 오쇼 아쉬람은 자유롭게 성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알려졌으며, 또한 성에 집착하는 이들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 즐기되 집착하지 말라!”
 
한때 ‘섹스 구루’라고까지 불리었던 오쇼는 성에 대해 억압하는 자들의 허구를 설파하면서 성을 통해 깊이 명상하도록 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밀교 또는 탄트라로 알려져 있는 이러한 방법들을 푸나 아쉬람 초창기 때는 오쇼가 직접 지도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명상법으로 가르치고 있다.
 
‘성’에 대한 관념뿐만 아니라 천국의 문조차 굳게 닫혀 있다는 소위 부자들에게도 명상의 기회와 영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 오쇼는 명상에서 ‘부(富)’의 부정적 개념을 철저히 깨부수고 있는 그대로 즐기되 집착하지 않는 법을 가르쳤다.
 
스스로 보리 다르마의 환생이라고 칭했던 오쇼는 강연 때마다 풍부한 유머 감각과 꿰뚫어보는 듯한 강한 눈빛으로 진부한 설법을 행하기보다는 웃음과 살아 있는 에너지로 많은 서양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쇼는 하루에 기본적으로 6권의 책을 독파하는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으며, 의학 서적에서 만화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책을 난독했던 걸로도 유명하다. 또한 강의 끝부분에 들려주는 ‘유머’를 위해서 제자들끼리 뉴스위크를 비롯, 타임즈 등에서 전 세계의 유머를 모아 정리하는 팀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오쇼가 남긴 가장 큰 공적 중의 하나는 서구인들을 명상의 세계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당시 서양인들에게 명상이라고 하면 가끔 TV나 신문, 잡지에서 나오는 특수한 계층의 종교인이나 동양 세계에서 행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극심하게 변하는 사회와 자신이 마치 부속품처럼 변해버린 현실, 가족간의 불화 등으로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는 피폐해져 버렸고, 그러한 현실 물질세계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것을 꿈꾸는 서구인들에게 오쇼는 단비를 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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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관념뿐만 아니라 천국의
문조차 굳게 닫혀 있다는 소위 부자와 권력자들에게도 명상의 기회를
제공한 오쇼는 '부(富)의 부정적 개념을
철저히 깨부수고, 있는 그대로 즐기되
집착하지 않는 법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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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담보로 한 극단적인 명상법도 창안
 
오쇼가 고안한 많은 명상법들은 가부좌를 틀기 어려운 서양인들도 쉽게 행할 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깊은 명상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는 작업부터 하게 만들어, 더 쉽게 명상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사념 없이 있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오쇼 아쉬람에는 100여 가지의 심리 요법 프로그램과 세션 프로그램 등으로 먼저 몸과 마음을 비우고 정화하는 작업이 선행된다.
 
오쇼가 고안한 가장 강력한 명상법 중의 하나인 ‘다이나믹 명상’을 시작했을 때, 오쇼는 과격한 방법으로 제자들을 명상 속으로 내몰았었다. 다이나믹 명상은 1단계 혼돈 호흡, 2단계 카타르시스, 3단계 후 만트라, 4단계 정지, 5단계 춤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4단계 ‘정지’ 단계에서 오쇼는 늘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정지라고 하면 호흡하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정지해야 한다. 그대의 모든 움직임과 생각을 지금 이 순간 정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쏘겠다.”
 
실제로 오쇼는 한 제자를 시켜 총을 들고 있다가 움직이는 이가 있으면 쏘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초창기 오쇼의 강연과 명상에 참가했던 그의 제자들은 오쇼의 극단적이면서 과격한 명상 도구에 빠르게 영적 변화를 경험했다.
 
다이나믹 명상법은 쿤달리니 명상법과 함께 오쇼 명상법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매일 아침 6시 다이나믹 명상법으로 시작해서 오후 4시 15분 쿤달리니 명상법으로 오쇼 아슈람은 부다홀 명상을 마무리한다.
 
이러한 방법 외에 이제 명상을 시작한 초보 명상가들에게 제일 먼저 권유하는 명상 프로그램으로는 ‘미스틱 로즈’가 있다. ‘미스틱 로즈’는 21일간 행하는 명상 프로그램으로 강력한 정화 프로그램이다. 7일간 하루에 3시간씩 ‘웃음’, 7일간 하루 3시간씩 ‘울음’, 7일간 하루 3시간 ‘침묵’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오쇼의 제자 ‘리라’라는 여인이 개발하여 지금은 전 세계 오쇼 명상센터에서 대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나는 박해 당하는 두 번째 예수!”
 
오쇼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힐링 프로그램’도 매우 다양하다. 매년 12월경이면 푸나의 오쇼 의술 아카데미에서 자연치유 요법(두개 천골 요법, 발반사 요법, 리발런싱, 단전 깨우기 마사지, 홀리스틱 마사지, 최면, 타키온 등) 전문가 과정이나 신비주의 학교에서 고안한 ‘기(氣) 요법, 채널링, 에너지 리딩, 오라 소마’ 트레이닝이 진행되고, 그 외에도 가족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페밀리 컨설턴트’ 프로그램들로 성황을 이룬다.
 
“깨달음을 위해서 최면, 힐링, 명상법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 오쇼의 뜻에 따라 오쇼 아슈람은 늘 새로운 요법과 프로그램으로 세계에서 찾아온 이들에게 명상적인 치유법과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서구 속에 명상과 새로운 영적 프로그램을 뿌리 내린 오쇼였지만 그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81년 미국으로 명상의 에너지를 나누기 위해 도미했던 오쇼는 4년만에 탈세 등 30여 가지 종목의 불법 행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기도 했다. 직설적이면서도 스스럼없이 토해내는 오쇼의 강연은 기존의 종교 체계와 종교가 말하는 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는데, 그것으로 인해 오쇼는 많은 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오쇼는 결국 불법 체류 죄목으로 추방당했고, 당시 이러한 미국의 행위와 그에 처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박해 당하는 두 번째 예수!’. 이후 잠시 그리스에서 머물다 푸나로 돌아간 오쇼는 ‘푸나 2’ 아슈람을 재건했다.
 
귀국한 이후로 급격히 악화된 오쇼의 건강은 미국의 감옥에서 몰래 주입된 독광선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의학적으로 증명하기 불가능한 것으로 오쇼의 제자들도 이에 대해서는 심증만 있을 뿐 법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제자의 부축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정도로 쇠약해진 오쇼는 그의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도(道)’와 ‘선(禪)’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비파사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몸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 몸 때문에 불행하지는 않다” 라고 말하던 오쇼는 1990년 1월 19일 ‘불편했던’ 몸을 떠났다. 600여 권이 넘는 오쇼의 강연집은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나와 오쇼가 떠난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스승은 떠났지만 가르침의 향기는 영원히
 
스승이 육체를 떠난 후 그의 에너지는 10년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2000년은 오쇼가 떠난지 11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오쇼의 제자로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몇 제자들 중엔 사트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상하듯 앉아 있기만 하는 인도의 각자 ‘키란’. 예수의 부활이라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흡사한 외모(예수를 실제로 본 적이 없음에도 불과하고)를 가진 28세의 젊은 각자 ‘티오와’도 있다. 그들은 오쇼의 제자로서 한결같이 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이젠 오쇼의 시대가 아닌 우리의 시대에 맞는 또 다른 명상법과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푸나의 오쇼 아쉬람에는 더 이상 오쇼가 앉아서 강의하던 의자가 없다. 아쉬람은 오쇼가 육체를 떠난 11년을 맞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인 있다. 오쇼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아름다운 사마디 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
 
잠시 지구에 머물다 간 오쇼 라즈니쉬의 향기는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공간 속에서 영원히 뿜어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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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인수 씨는
이화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94년부터 인도 푸나에 있는 ‘오쇼 국제 의술 아카데미’에서 발 반사요법 및 두개골 천골요법을 익혀 이분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오쇼의 영적 세계에 매료되었으며, 현재 오쇼 젠타로 카드 카운셀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발을 만지는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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